Not for her, not for him, but for me. - 完

Epilogue. 채광 좋은 커다란 유리창 아래 아이보리색 편안해 보이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. 그 위에는 도롱도롱 곤히 잠든 불독 한 마리와 그 개를 쓰다듬고 있는 싱토, 그리고 싱토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크리스가 앉아 있다. 그 옆쪽으로 따로 놓인 1인용 소파에선 묵이 대략적인 오프닝과 엔딩 멘트를 한 번 더 확인하고, 그런 모두를 둘러싸고 방송용 ...

6. 갑자기 방영 예정일이 석 달이나 당겨지는 바람에 현장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의외로 단 감독은 쉽게 설득이 됐다. 원래부터 즉흥적으로 무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데다 자신은 A팀을 이끌면서 B팀에 C팀까지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 그의 도전 정신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. 그가 싱토에게 제시한 조건은 간단했다. 매 회차마다 최종 검수는 자신이 하는 ...

5. 벌써 일주일 째 싱토가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. 실내 세트로 들어오는 문이 열릴 때마다 크리스의 고개가 번개처럼 그쪽으로 돌아가고 이내 그 문으로 들어서는 이가 제가 기다리는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때마다 어깨가 축 처진다. 그런 크리스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유이가 결국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. “크리스, 대기실에서 좀 쉴래? 어차피...

4. “잘 부탁해, N'.” “잘 부탁드립니다, P'피처.” 크리스를 내려다보는 피처의 눈빛에 조소가 섞여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. 촬영장 한 쪽에서 여왕님 대접을 받고 있는 기기를 보니, 분명 그녀가 피처에게 어떤 식으로든 저에 대한 언급을 했음에 틀림없다. 하지만 크리스는 그런 피처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척 말갛게 웃어보였다. 카메라 앞에서든 카메라 밖에...

3. 한적한 방콕 외곽 카페에서 온통 블랙으로 한껏 멋을 낸 남자의 맞은편에 앉은 크리스의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. 처음 SPR 쪽에서 일 때문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만 해도 이게 싱토의 덫인지, 아니면 베브 OST 이후 제게 신뢰가 생겨 정말로 일을 맡기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전자가 맞았나 보다. “카페 같은 데는 안 간다고...

2. 몇 장 안 되는 서류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싱토의 표정이 답지 않게 심각했다. 마지막 장의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었을 때 그의 얼굴에는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. “크리스 피라왓 생포티랏.” 지난 번 저작권료 문제로 알아봤던 기본적인 배경은 별개로 이번에 따로 사람을 사서 조사한 크리스의 내밀한 사생활까지 다 이 서류에 들어있었다. 그리고...

1. 싱토가 신랑을 보지도 않고 신부 대기실로 먼저 향한 이유는 단순했다. 행복에 젖은 그 여자의 80만 밧짜리 웨딩드레스에 선물로 가져온 레드 와인을 한껏 뿌려주려고. 그러면 오늘로써 젊지만 어른스럽고 젠틀하다는 자신의 이미지는 완전히 정반대의 것으로, 어쩌면 더욱 심한 수식어로 점철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싱토는 화가 나 있었다. 자그마치 8년이...